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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멋

김영하 단편선_낭독 글감 공모전에서 맛보는 그의 단편선 발췌 글귀. 네시오의 잡화점

by 네시오 2019.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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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부로 마감이 된 낭독 공모전입니다. 김영하의 단편선을 부분 발췌해서 하는 건데요.. 너무 좋아하는 작가라서 해당 페이지를 담아왔습니다. 앞으로 이런 좋은 공모나 이벤트가 있으면 많이 게재하겠습니다. 그리고 해당 낭독 공모에 참여했던 분의 음성을 첨부하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허락받았어요!

 

 

 

낭독 공모전은 많은 응모자의 목소리로 김영하 단편선을 녹음한 후에 이메일로 발송하는 거예요.

그럼 단편선 발췌 내용을 한 번 공유해 보겠습니다! 총 다섯 편의 단편입니다. 물론 발췌 내용!

 

 

추후에 오디오북으로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1.피뢰침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J를 만난 건 세번째 연구모임에 참석했을 때였다. 그는 특수뇌전(雷電) 현상에 대한 발제를 했다.

세인트 엘모의 불(Saint Elmo’s fire)은 일종의 선단방전(先端放電) 현상입니다. 뇌우가 내리고 있는 가까이에 강한 전기장이 있을 때, 피뢰침이나 배의 돛대 끝에서 방출되는 거지요. 검은 바다, 퍼붓는 빗줄기, 마스트를 후려치는 괴수의 혓바닥 같은 파도, 나침반이 제멋대로 돌아가고, 쇠붙이들이 하늘을 향해 딸려올라가는 장면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렇게 말하는 그의 눈에서 세인트 엘모의 불을 보았다. 그의 눈과 눈 사이에서 파르란 불꽃이 타닥거리는 것 같았다.

 

회원들 모두 그의 말을 경청했다. 그때 누군가 귓속말로 나에게 그의 목에서 등까지 전문(電紋)이 새겨져 있다고, 자못 존경스러운 어투로 알려주었다. 앞선 두 번의 연구모임에서 내가 배운 바에 따르면, 전문이란, 전격 세례를 받을 때 몸에 새겨지는, 나뭇가지 모양, 혹은 번갯불 모양의 피부 홍반인데, 모두에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었다. 수만 암페어의 전류가 몸을 통과할 때, 그 길을 따라 피부의 모세혈관이 팽창하면서 그 흔적을 남기는 것인데, 그 모양이 번개를 닮았기 때문에 전문이 없는 사람들은 가진 자들을 부러워하는 기색이었다.

 

그가 칠판을 향해 돌아설 때, 유심히 목 뒤를 살펴보았다. 일부러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등이 깊게 파인 헐렁한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그 때문에 그의 붉은 전문이 그대로 드러났다. 직접 그걸 보자 새삼 공포가 다시 엄습해오는 것을 느꼈다. 그 전문은 이들의 정체에 대한 일말의 의혹을 완전히 씻어주는 역할을 했다. 기실 세 번이나 모임에 나오면서도 나는 이들이 어쩌면 통신에 존재하는 허다한 마니아 집단들처럼, 도토리 키재기식의 상식 대결이나 벌이는, 할 일 없는 속물들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러기를 바랐던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는 게 점점 더 분명해졌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국내도서
저자 : 김영하(Young Ha Kim)
출판 : 문학동네 2010.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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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로봇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수경은 남자의 시선을 비켜 옆 개찰구를 지나 역 구내를 빠져나간다. 남자는 그때까지도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가 그녀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머뭇머뭇 그녀를 뒤따르기 시작한다. 그녀의 발걸음은 반사적으로 빨라졌다. 이런 일이 흔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지도 않았다. 이십대 초반쯤에는 이렇게 따라온 남자와 커피도 마시고 했지만 뒤끝은 좋지 않았다. 남자들은 가벼운 모험이 성공하면 지나치게 흥분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의 눈에 비칠 뒤태에도 신경을 쓰면서 재빨리 계단을 올라갔다. 백 미터만 걸으면 회사였다.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어. 게다가 지금은 출근시간이잖아. 백주대낮이고. 그러니 별로 걱정할 일은 없을 거야. 숨이 가빠 걸음을 늦추는 순간 남자가 그녀를 가로막고 섰다. 그녀는 짐짓 화난 얼굴을 지어 보였다.

뭐예요?

남자는 얼른 대답하지 않고 그녀를 잠시 응시했다. 마치,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잖아,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혹은, 왜 날 알아보지 못하지, 라고 책망하는 듯한 눈길 같기도 했다. 남자가 입을 열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지하철역에서 당신을 보는 순간, 제 내부의 뭔가가 움직였습니다. 당신과 말하고 싶고 당신의 말을 듣고 싶고 당신과 함께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량하고 맑게 생긴 남자가 너무도 진지하게 말하고 있어 그녀는 하마터면, 그럼 그래요, 라고 할 뻔했다. 물론 그녀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대신, 죄송합니다, 바빠서요, 라고 대답하고는 회사를 향해 걸었다. 그녀의 등뒤에선 더이상 발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건물 정면의 회전문을 밀고 들어가다가 수경은 잠시 멈칫거렸다. 그렇지만 무심한 회전문은 망설이는 그녀를 회색 빌딩 안으로 쑤욱 밀어넣었다.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해당 녹음자의 녹음 문의는 댓글로 가능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국내도서
저자 : 김영하(Young Ha Kim)
출판 : 문학동네 2010.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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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그림자를 판 사나이

오빠가 돌아왔다

 

 

바오로는 이른 저녁, 아직 해도 채 떨어지기 전에 왔다. 오른손에 밸런타인 병을 들고 있었다. 굵고 짙은 눈썹, 딱딱한 턱선 때문에 마치 엘리트 장교처럼 보였다. 그러나 발그레한 볼이 그런 딱딱한 인상을 중화시켜주었다. 그런 야누스적 풍모 덕이었는지 그는 여자애들에게 인기가 있는 편이었다. 여자애들은 편지를 보내고 그의 집 앞에서 죽치고 앉아 사람이 왜 그렇게 차갑냐며 엉엉 울었다. 짝사랑치고는 요란들 했다. 사춘기의 그 모든 난리법석은 그가 신학교에 들어가면서 끝이 났다. 그 뉴스는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그가 원서를 낸 지 몇 시간 만에 온 성당에 알려졌다. 바오로가 신학교에 간대! 여자애들은 대놓고 훌쩍였고 남자애들은 입을 비쭉거렸다. 만인의 연인이 되겠다는 건가. 남자애들은 발치의 돌을 힘껏 차 굴렸다.

그러던 그도 서른다섯을 넘기면서 그런 아도니스적 매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배도 나오고 턱선도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눈의 총기는 희미해지고 가늘고 길던 손에도 살이 붙었다. 사파이어 반지가 손가락을 파고들고 있었다.

앉아. 면 삶고 있으니까 뭐 좀 보고 있어.”

나는 냄비에서 면을 건져 먹기 좋게 둥근 접시에 담아 미리 만들어놓은 토마토소스를 얹어 내갔다. 동네 슈퍼에서 사온 마주앙 스페셜을 곁들였다. 포도주 마시는 게 직업인 그는 빤히 포도주병을 쳐다보다 킥킥 웃었다.

왜 웃어?”

마주앙이 한국 천주교 공식 포도주잖아.”

그랬었나? 맛은?”

좀 다르지, 아무래도.”

포크에 면을 감아 돌리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그가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좋다.”

뭐가?”

친구하고 스파게티 먹고 있으니까.”

왜 이래, 징그럽게.”

오빠가 돌아왔다
국내도서
저자 : 김영하(Young Ha Kim)
출판 : 문학동네 2010.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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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밀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10. 마크트플라츠에 떨어지는 햇빛은 어딘가 여성적인 데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햇빛을 따라 자리를 옮겨다닙니다. 웨이트리스들이 분주히 오가며 카푸치노를 나르고 관광객들이 주는 후한 팁을 챙깁니다. 머리가 하얗게 센 나이든 이들은 유명한 하이델베르크 성을 다녀오느라 지친 발을 따뜻한 광장의 포석 위에 내려놓고 호프 향 강한 맥주를 천천히 마십니다.

대학생들은 광장을 피해 자기들만 아는 골목길로 자전거를 타고 지나다니고 그런 골목에는 으레 헌책방이나 이발소, 좁고 어두운 맥줏집이 늘어서 있습니다. 테이블보를 깔지 않는 싸구려 레스토랑과 담배연기 자욱한 카페도 그들을 기다립니다. 나로선 관광객들이 득실거리는 하우프트슈트라세나 마크트플라츠보다는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이런 좁은 골목이 더 좋습니다.

죽음을 생각하기에 좋은 곳은 바로 이런 곳입니다. 편안한 신발을 신고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기는 늙은 관광객들과 제 몸의 힘을 이기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마치 콘트라스트 강한 흑백사진의 명부와 암부처럼 도시를 양분하고 있는 곳. 눈을 들면 견고한 성이, 이제는 무용해져버린, 그 어느 것으로부터도 도시와 제후를 지킬 수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는, 이제는 겨우 제 아름다움으로 오직 자기 자신만을 보호할 수 있게 된 고성이 오래된 도시와 더 오래된 강을 굽어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전거를 탄 젊은이들은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이곳을 떠날 날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떠날 것입니다. 잿빛 슈트에 눈부신 셔츠를 받쳐입고 일하는 금융의 중심지 프랑크푸르트나 정치의 도시 베를린으로 가겠지요. 더 대담한 이들은 런던이나 뉴욕으로 떠나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고자 할 것입니다. 그런 젊은이들을 보면 로마 제국 시대, 가도에 늘어선 묘비들처럼 심술궂게 속삭여주고 싶습니다. 곧 죽을 것을 잊지 말라고.

 

 

5. 당신의 나무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여자가 안락의자에 앉아 당신의 눈길을 피하고 있다. 임상심리사인 당신은 로르샤흐 테스트를 그녀에게 실시하는 참이다. 이 그림이 뭘로 보입니까? 당신이 펼쳐든 카드에는 잉크가 번져 만들어낸 무의미한 그림들이 의미를 얻으려 하고 있었다. 벌거벗은 여자가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있네요. 여자는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여자의 질 같기도 하구요. 여자가 덧붙였다. 환자들의 그런 반응이 처음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그림에서 나비나 박쥐를 본다. 당신은 그녀의 반응을 꼼꼼히 기록한다. 그녀가 그림의 세부를 보는지 전체를 보는지, 여백을 전경(前景)으로 보는지 배경으로 보는지, 따위까지.

당신은 계속해서 다른 카드를 내민다. 이건 뭘로 보이시나요, 두 사람의 식인종이 한 여자를 잡아먹고 있네요. 왜 그렇게 보셨나요? 당신의 질문에 여자는 긴 손톱으로 그림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보세요. 가운데 있는 여자가 거꾸로 들려 있잖아요. 그리고 두 사람이 그 여자의 다리를 붙잡고 있구요. 뭘 하려고 그러겠어요. 잡아먹으려는 거지요. 사람을 잡아먹는 건 누구겠어요. 식인종이죠.

치료는 당신의 일이 아니다. 당신은 그저 정확히 기록하고 판단하여 정신과 의사에게 보내면 그뿐이다. 당신은 계속 꼼꼼히 그녀의 대답을 받아적는다. 열 장째의 카드를 내밀었을 때, 여자가 말했다. 열 장째니까 그게 끝이죠? 그 유치한 테스트들은 언제 없어지죠? 로르샤흐, MMPI, TAT 따위 말이에요. 나는 그 무수한 문항들에 대답했지만 나아진 건 없었어요. 로르샤흐 테스트라는 그룹사운드가 있는 거 알아요? 그 사람들 음악 들어봤어요? 앤디 워홀이 1984년에 <로르샤흐 테스트>라는 그림을 그렸던 건 알고 있나요? 유치한 그림이에요. 쓱쓱 물감들을 뿌리고 그걸 반으로 접으면 끝나는 거죠. 물론 완벽한 대칭, 그러면서 무의미한 그림이 되겠죠. 그걸 보면서 박쥐를 상상하든 여자의 질을 상상하든 그게 무슨 무의식을 드러내주나요? 드러내주면 또 무슨 도움이 되나요. 당신들이 아는 만큼 나도 알아요. 그러니 쓸데없는 그래프는 그만 그려요.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해당 녹음자의 녹음 문의는 댓글로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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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오빠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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